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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0년의 목표/바이올린

바이올린을 시작했다.

 

 

바이올린을 시작했다. 

 

어릴 때 피아노학원을 다닐 때에는 어렴풋이 해보고 싶다.라는 생각이 바이올린에 대한 첫만남이었다. 

그 이후로 관심은 두고 있었지만 차마 시작해보기에는 선뜩 겁이 났던 바이올린. 

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에 입사하고 두번째로 바이올린과 연이 닿았을 땐 좀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. 

 

레슨을 신청하고, 

신입의 패기로 겁없이 바이올린도 구매하고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원까지 열심히 걸어다녔던 기억이 난다. 그 후로 3개월은 다녔었던가 .. ? 

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과 당시 자취를 시작하고 경제적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바이올린 레슨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. 

 

이 후로 나는 두번째 회사생활과 함께 이사를 하고, 한치의 고민도 없이 구입해두었던 바이올린도 함께 챙겨왔다. 

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바이올린은 우리집 옷장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빛 한 줄기 볼 수가 없었다.

덕분에 가방의 뒷쪽 면에는 옆은 푸른빛과 하얀색이 섞인 곰팡이가 피어올랐지만, 그 때에도 내 마음은 미안함으로 가득했다. 마치 끝없이 흘러가는 무한루프 속에 던져진 죄책감처럼 이 감정은 늘 무한으로 내 마음 어느 곳을 툭,툭 스쳐지나 늘 돌아왔다. 

 

인터넷에 바이올린케이스를 주문하고, 

가방 속에서 바이올린과 활, 소모품을 꺼내 이리저리 둘러보지만, 난 바이올린에 대해서는 까막눈인지라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. 

음은 맞는 건지, 줄이 늘어난건지, 바이올린은 지금 괜찮은 상태인건지.

 

그렇게 새로 도착한 바이올린가방으로 악기를 정리하고 난 후, 

기존의 곰팡이 가방은 잘 처리해서 폐기하고, 

그 후 반 년 가까이 바이올린은 다시 내 옷장 속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.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은 꾸-욱 자리잡은 채.

 

그러다가 문득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어느 바이올린리스트의 영상.

바이올린에 대해서는 유튜브에 검색한 적이 없었음에도 가끔 소름끼치는 알고리즘을 보여주는 유튜브. 

당연히 자연스럽게 영상을 재생하게 되었고, 그 후로도 가끔 그 사람의 영상을 틀어보기는 했지만 딱히 내가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 해봐야겠다는 용기는 감히 갖지 못했다. 

 

근데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걸까 ? 

 

정말 어느 날. 

아무런 연계점도 연결점도 연상점도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.

이런 생각이 들었다. 

'우리 동네에 성인 취미반으로 바이올린레슨 해주는 곳이 있을까?' 

 

물론 이전에도 이 생각을 검색한 적은 몇 번 있었다. 

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검색만 하고 상상의 나래속에서 파가니니를 연주하는 나를 그리면서 끝나곤 했는데, 이 날은 검색결과가 전혀 새로운 곳으로 날 이끌어줬다. 

 

이전에는 못 보던 바이올린 레슨실이 생긴 것이다. 

새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. 

 

흐음 - 

선생님의 이력을 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.

그냥 교습실 분위기와 선생님이 올린 홍보컨텐츠에서 느껴지는 말투가 편안했다. 

 

'전화 .. 한 번 해볼까 ?'

 

가볍에 레슨비나 물어보자며 전화를 슬쩍 걸었는데, 연결이 안된다. 

레슨 중이라 나중에 전화 주시겠지, 싶어 기다렸는데 퇴근할 때까지 전화가 안와있었다. 

퇴근하자마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. 여전히 연결이 안된다. 

 

아직 ... 수업 중인가 ? 싶어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씻고 나니 어느 덧 저녁 8시를 넘어가 있었다. 

평소같았으면 굳이 이렇게까지 전화할 필요가 있나? 그냥 가볍게 물어보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텐데.. 하며 넘겼을텐데 이상하게 그 날 나의 상태는 달랐다. 다시 전화를 건 것이다. 

통화버튼을 터치하고 나서도 내 행동에 내가 너무나 놀랐다.

 

'이번에도 안 받으면 난 바이올린하고는 역시 인연이 아닌가봐..' 

라며 쓸데없는 자기합리화를 하던 중 연락이 닿았다. 

그리고 순식간에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다음 날 오전에 오프라인 상담을 약속한 후였다. 

 

다음 날 아침, 

상담시간을 앞두고도 수없이 머릿 속을 강타하던 생각들.

 

'가지말까? 아후 .. 가도 되나? ... 나 레슨비 감당할 수 있으려나?, 아니 바이올린을 켤 수는 있을까? 내가 잘 할 수 있을까?, 도대체 왜 어제 난 전화를 해가지고, 아니 왜 유선으로 레슨비도 다 들었는데 오프라인 상담은 왜..? 왜 잡은거야?'

 

수만번을 생각하고 생각했다. 

심지어 선생님 집 앞에서도 고뇌가 머릿 속을 가득 채웠고, 덜덜덜 떨리는 손과 반쯤은 풀린 눈으로 그렇게 세번째 바이올린 인연을 다시 잇기 시작하였다. 

 

다행스럽게도 상담을 통해 선생님의 봐주신

나의 연습용 바이올린은 꽤 괜찮은 상태였었다. 

일부는 조금 관리가 필요하고 조율이 필요했지만 바로 연습용으로 쓰기에는 크게 이상은 없는 상태였다. 

 

첫 방문때는 수업료free였던지라 나는 상담을 했던 그 날 바로 이제까지 배웠던 부분을 야금야금 상기시키기 시작했고, 현재 나의 상태를 체크하고 활잡기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. 

배워본적 없었던 바이올린의 이론이 첫 수업의 주를 이뤘지만 이 이론은 나에게 지금 아주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. 

아무생각 없이 따라가기만 했던 수업이 아니라 성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론 수업. 

바이올린을 관리하는 방법을 천천히 배우고, 소리의 세기라던가 활을 잡는 근육에 익숙해져야하는 이유를 알고 나니 뭔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간질간질한 것이 툭툭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.

 

선생님 역시 알려주시는 스타일이 나의 가치관과 비슷했었고, 

편안한 수업 분위기에 첫 레슨 1시간이 1초처럼 느껴졌다. 

이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, 여러가지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최소 반년은 들을 수 있는 레슨비를 책정해 따로 준비하고, 과감히 다시 활을 들게 되었다. 

 

그리고 두번째 레슨 방문. 

여전히 활 긋는 건 형편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붕붕 떠 다니기 직전의 느낌마냥 간질간질하다.

 

하지만 절대음감은 무슨.

선생님이 손가락을 잡아주시는대로 하고 있을뿐, 오랜시간 음악 쪽은 떠나있었던 내 귀는 지금 내가 키는 음이 어떤 음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. 

활을 켜도 이게 울림이 잘 내고 있는건지, 내 귀엔 쇳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이게 맞는건지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고, 손가락도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아 답답해 짜증해 순간적으로 솟구쳤지만, 레슨을 끝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가볍고 총총거렸다.

 

심지어 수동적인 삶이 최고의 편안함이요,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제일 좋은 것이다.라는 마인드로 해야할 일은 미루고 연습의 ㅇ자도 내 사전엔 더이상 필요없는 것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연습욕구를 다시 상기시켜주기 시작했다. 

아침에 눈이 번쩍 뜨여지자마자 드는 생각도 '아, 바이올린 잡아야지.'

점심 먹고 휴식시간이 단 5분이어도 '바이올린 활 한 번만 긋고 다시 넣어야지.'

퇴근 후에도 저녁 먹고 잠자기 바쁜 내가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있으니 내가 봐도 내 자신이 신기하다. 

뭐에 씌였나.

 

이것도 솔직히 작심삼일이라고 연습해야한다고 난리쳐봤자 얼마나 오래 가겠어, 라며 스스로를 지켜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2번째 레슨 이후로는 연습을 단 1번도 하지 않았다. 

 

'내가 그럼 그렇지 ! '

 

어차피 난 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취미로 배울 생각인데 뭘, 이라며 레슨만 가서 열심히 하는데 의미를 두자며 느슨해지기 시작하는 내 모습은 3번째 레슨 이후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. 

 

 

[3번째 레슨.]

 

이렇게 내 자신이 한심스러울 수 있었을까.

2번째 레슨보다 형편없어진 활긋기에 선생님은 애써 원래 이런거라며 부드럽게 다독여주셨지만 난 그 순간의 내가 이렇게 한심하고 멍청할 수 있는지 분노하고 이 분노를 주체하기가 어려웠다.

도대체 난 왜 나에게 화가 난걸까 ? 

난 그냥 내가 계속 살아왔던대로 했을 뿐인데. 

과거에도 비슷하게 자격증 시험을 치를때도 그저 시험 몇일 전 그럭저럭 대충 외워 간신히 합격컷트를 넘기거나, 불합격되어도 그려러니하며 아주 약간 울적하고 결과에 납득했을뿐이지 이렇게까지 내 행동에 스스로에게 분노를 느낀 적은 학창시절 이 후로 오랜만이었다.

 

'연습... 해야겠다.'

 

3번째 레슨 후 든 머릿 속에 든 생각이다. 그게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. 

그리고 오늘까지도 계속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활을 꼭 잡고 있다. 

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강박적으로 연습하자는 건 아니지만, 약속이 없는 날에는 무조건 10분만이라도 활을 긋자며 바이올린을 꺼내들어 연습하기 시작했다. 

 

연습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고, 

오늘 어제 저녁 연습때는 드디어 귀가 뚫리기 시작했다. 

라,시,도,레,미가 들리기 시작할 때 살짝 소름이 돋고 엄청난 환희와 열망이 폭죽마냥 펑펑 터지는 열기 속에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창피함도 날려버리고 작은 별을 연주해서 들려주었다. 

 

내 기억으론 처음이었다. 

바이올린을 이용해서 혼자서 완곡한 것은. 

비록 아주 짧은 동요이지만. :) 

 

여전히 오늘 다시 잡은 활은 내 마음대로 안그어지고 소리도 덜덜덜 떨리지만 이상하게 마음만큼은 이리 편안할 수가 없다. 선생님의 레슨노트에 아이디어를 받아 나도 따로 바이올린 연습노트를 적기 시작했고, 솔직히 지금 이 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겠지만, 가능하다면 올 해 연말에 가족과 지인들을 모아 짧게나마 바이올린 미니연주회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. 

 

앞으로가 너무나 궁금해진다. 

이런 기분은 진짜 오랜만이다.